2025년 공간학생건축상의 주제는 건축이 담론적 실천 행위(discursivepractice)라는 관점에서 출발한다. 푸코는 담론(discourse)을 권력과 지식이 얽힌 사회적 구조로 바라보았다. 그의 이론에서, 담론은 특정 시대와 사회에서 무엇이 진리로 받아들여지고 어떤 주제가 논의될 수 있는지를 결정한다. 담론은 특정 주제에 대한 의견, 가정, 가치관이 담겨 있으며, 사회적 맥락에 따라 형성되고 변화하고 사회적 현실을 형성하거나 재생산할 수 있다. 어떤 주제에 대해 무엇을 말할 수 있고, 말할 수 없는지를 규정하는 체계, 즉 담론은 우리가 무엇을 '진리'로 여길지를 결정하며, 특정 방식으로 사고하고 행동하게 만든다.
그렇지만 현대 건축에는 특정 방식으로 사고하고 행동하게 만드는 유일한 담론이 존재하지 않는다. 극단적으로 개별화되어 사회적 권력으로 작동하지 않은 담론만 있는 것 같다. 특정한 건축이 진리로 여겨지며, 건축을 만드는 방식과 교육하는 방식이 담론의 형태로 분명하게 존재했던 시기는 보자르(Beaux-Arts)가 마지막일 것이다. 배형민에 따르면 “보자르 체계는 널리 공유되던 관습을 건축 기율로 유지했던 마지막 사례였다.” 그리스 로마를 원류로 하는 서양 고전주의 건축의 기반 위에 비교적 분명하게 건축 담론의 경계가 존재했던 시기였고 이 때는 건축가가 되기 위한 분명한 훈련의 과정, 건축가가 된 이후 해야 하거나 할 수 있는 명확한 직능의 범위가 정의되어 있었다.
이에 반해 현대건축의 담론은 경계가 모호해진지 오래다. 아마도 건축담론의 경계가 건축 외부의 것으로부터 오랜 시간 침식의 과정을 거쳤기 때문일 것이다. 현대 건축에는 건축과 건축이 아닌 것이 섞여 한데에 존재한다. 언젠가부터 건축가는 쇠락한 도시를 부흥시키는 영웅, 때로는 전 지구적 기후위기에 그럴 듯한 대안을 제시하는 사이비 과학자, 때로는 붕괴된 공동체를 회복하는 활동가가 되어야 했다. 심지어 근래에 건축은 AI와 겨루며 인류만이 가진 예술적 창의성의 증거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증상도 보인다.
분명한 담론적 경계 안에 존재하던 건축은 더이상 홀로 존재할 수 없으며 건축의 내부가 아니었던 외부의 요구나 힘에 좌우된다. 사회관계가 복합적이고 기술의 발전이 고도화될수록 흐려진 담론의 경계 위에서, 건축이 해결할 수 없는 더욱더 복잡해진 문제상황에 건축이 동참하기를 요구받는 것만 같다. 이러한 문제들은 건축 그 자체로 해결할 수 없다.
현대적 의미에서 건축이 담론적 실천행위라는 명제는 곧 사회 속에서 건축의 역할, 건축의 정의, 건축의 작동 방식, 건축을 바라보는 방식이 특정한 외부 담론과의 역학관계에 따라 매개되는 극단적으로 유동적인 상태임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담론들 사이의 역학관계의 관점에서 건축은 점점 더 수동적 조건에 놓일 수 있다.
이 조건은 역설적으로 건축이 무엇을 담론의 재료로 선택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건축가 스스로 대답해야 한다는 과제를 남긴다. 주류 담론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무엇에 가치를 부여할지는 선택하는 것 자체가 건축가의 역할 중 하나가 되었다는 것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 혹은 하지 말 것인가? 건축이 담론적 실천행위라는 명제는 다룰만한 가치가 있는 것, 혹은 해야만 하는 것에 대한 선택과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배제라는 능동태가 담겨있다.
2025년의 공간건축 공모전은 건축 내외부의 담론이 상호작용한다는 전제하에, 참가자들이 자기만의 담론을 전개해 나가는 과정에서 새로운 건축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심사에 있어서는 아래의 몇 가지 전제를 기준으로 작품을 판단할 것이다.
1. 건축(가)의 선택, 탁월한 당위성.
기후 위기, 에너지, 전쟁, 공동체, 지역성 혹은 역사성, 개발 vs 보존, 인공지능의 문제들 혹은 그 외 수많은 동시대 삶의 문제 중 한가지를 선택하고 그 선택의 당위성을 주장하길 바란다. 중요하게 보고 싶은 점은 건축의 중심담론으로 삼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참가자 스스로 선별하여 선택하는 과정과 그 선택이 가진 설득력이다.
2. 유동적 담론의 경계, 건축의 내부와 바깥이라는 인식.
그 선택은 유동적 담론의 경계에 대한 인식 위에서 설명되어야 한다. 건축의 내부와 외부를 탐구하고 나름대로 정의할 필요가 있다. 인류세의 관점에서 건축(가)의 역사는 찰나에 불과하지만 그 속에서 담론의 경계가 어떻게 유동적으로 변해왔는지 살필 기회를 갖기를 바란다. 건축(가)은 중세 석공의 기술처럼 비밀스럽게 간직되고 전수되어온 대체 불가능한 직능이기도 하지만 전문분야의 컨설턴트 없이는 아무것도 실현할 수 없는 무능한 존재이기도 하다. 건축 직능의 불완전한 속성으로 인해서 건축 내외부 담론의 역학관계가 존재하게 된다. 이 뚜렷하지 않은 담론의 경계를 가늠하고자 할 때, 건축(가)의 역할을 확장할 수 있는 기회가 존재한다.
3. 현실적 사회관계 속에서의 건축
건축이 처한 현실을 비판적으로 독해하길 원한다. 근거 없는 추상과 낭만적 태도가 아닌,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실존하는 삶의 복합적 관계 속에서 건축이 어떤 역할로 존재하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제안이어야 한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나 가상공간을 상정하지 않기를 바라고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대상지를 선정하여 작업한다.
2025 공간국제학생건축상은 건축의 사회적 역할과 직능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직업적 활동임을 전제로, 그 외연의 변화를 탐구할 것을 요구했다. 이는 미래로 확장되는 업역에 대한 가설과 실험뿐 아니라, 수천 년간 변하지 않은 건축의 과거를 동시에 들여다보며 역사, 이론, 관습, 재료, 기술 등 다양한 요소들의 총체적 관계 속에서 건축을 이해해보려는 시도였다.
이 발제는 자율적인 건축 담론이 사라지고 그 경계가 끊임없이 침식당하고 있다는 위기의 자각에서 출발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위기는 모두에게 공통되지만, 유효한 대응은 대부분 개별적일 수밖에 없다. 시대와 장소는 언제나 건축을 다르게 만들어내기에, 범용적이고 보편적인 해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보편적 위기 속에서도 개인적인 것을 끊임없이 강화해야 하며, 그것이 곧 담론의 토양이 된다.
제출된 작품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건축의 경계”를 탐구하면서도, 공통적으로 오늘날 건축이 수행해야 할 사회적•생태적•제도적 역할을 진지하게 성찰하고 있다. 사회와 생태, 기술과 제도 사이에서 ‘작동하는 건축’을 모색했다는 점에서 시대적 전환에 대한 자각을 품고 있다. 질문의 밀도와 사유의 깊이 면에서 균질하지는 않으나, 공통적으로 장소와 시간을 벗어날 수 없는 건축의 숙명을 비판적으로 독해하려는 시도들이었다. 모든 작품은 완성되지 않았지만, 비판적 사유의 씨앗으로서 앞으로의 담론을 자극하기를 기대한다.
임세빈+오혜린+고서연
인하대학교
De-Construction To Re-Define
시대의 역할을 다하여 전락한 공간에 대한 건축적 자세: 사라짐을 설계하는 새로운 존재 방식
그동안 건축가는 복합적인 사회요구를 공간화하며, 공간을 ‘구축’하는 행위를 지속해왔다. 그러나 인구 소멸과 수도권 집중 현상, 산업구조의 변화와 같이 시대가 요구하는 바가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기능을 상실한 공간들이 도심과 지역 전역에 걸쳐 늘어나고 있다. 따라서 건축가는 점차 단지 공간을 새롭게 창출하는 데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쓰임을 다했거나, 방치된 공간을 새롭게 해석하고 전환하는 역할 또한 요구받게 되었다.
이 전환의 지점에서 우리는 ‘어떻게 공간을 만들 것인가’를 넘어, ‘시대적 역할을 마친 공간을 어떻게 의미 있게 마무리하고 전환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시점에 와있다. 단순히 철거하는 방식이 아닌, 공간이 자연스럽게 퇴장하고, 새로운 질서 속으로 편입되거나 자연으로 회귀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 이것이 오늘날 건축가에게 새롭게 요구되는 역할이다.
강원도 태백시에 있는 장성광업소는 한때 국내 에너지 공급의 중추로서 산업화를 이끈 석탄 채굴의 중심지였다. 그러나 산업 쇠퇴에 따라 폐광되었고, 공간은 현재 방치된 채, 자원을 끌어올리던 땅에는 깊은 채굴 흔적과 폐석 더미, 오염된 토양만이 남았다. 지역은 인구 감소와 경제 쇠퇴를 겪고 있으며, 이제는 광업소 부지의 새로운 전환을 모색하는 지점에 서 있다.
우리는 이러한 장성광업소 부지를 자연으로의 회복과 생태적 회귀를 통해 산업의 흔적을 기억하는 장소로 재정의하는 것을 제안하고자 한다. 행위가 중단된 대상지에서 지속적인 파괴가 일어나는 원인은 광산업의 잔해로 남겨진 수천 톤의 중금속 오염 폐경석 더미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 폐경석은 인간의 개입을 통해 흡착성과 여과성이 뛰어난 제올라이트로 변환되어 파괴의 주체에서 회복의 도구로 전환될 수 있다. 제올라이트를 활용한 정수 개비온 벽체는 자연의 회복 과정을 건축적으로 시각화한다. 정화된 물은 과거 광부의 목욕탕이었던 수공간으로 연결되어 변화된 현재를 바라보는 전시 방식으로 대상지의 의미를 재구성할 수 있다. 이 물길은 광업소가 점유했던 땅을 자연에 돌려주는 인공습지로 연결되어, 훼손된 대지의 생태적 균형을 점진적으로 회복시킨다.
한 시대를 지탱하던 산업의 심장이자 자원의 원천이었던 장소에서 일부는 해체되고, 일부는 시간과 함께 퇴색되며, 자연 일부로 흡수되도록 유도하는 것 - 이것이 우리가 이 프로젝트를 통해 제안하는 ‘소멸의 방식’이다.
심사평
작품은 건축가의 역할을 단순히 공간을 ‘짓는’ 행위에 국한하지 않고, 시대적 역할을 다한 공간을 ‘어떻게 의미 있게 마무리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확장한다. 이는 발제문이 요구한 바와 같이, 건축의 내부와 외부 담론의 경계 위에서 선택과 당위성을 증명하려는 시도와 맞닿아 있다.
대상지로 설정된 태백 장성광업소는 산업화 시대의 상징이자, 동시에 그 쇠락 이후 남겨진 폐허이다. 출품자는 이 장소를 단순한 철거의 대상이 아니라 ‘기억과 회복’을 매개하는 건축적 장치로 전환한다. 특히 광산 잔재물을 전환하여 파괴의 흔적을 회복의 도구로 삼은 제안은 사회적•생태적 담론을 건축의 언어로 재구성한 점에서 설득력이 크다. 제올라이트로 변환된 폐석을 정수 개비온 벽체로 제시하고, 정화된 물길을 목욕탕과 전시공간, 습지로 이어가는 방식은 건축이 생태적 회복을 촉진하는 매개체가 될 수 있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사라짐을 설계한다’는 역설적 명제를 통해 건축가의 새로운 사회적 역할을 탐구하며, 건축이 선택해야 할 담론적 재료로서 ‘소멸과 회복’을 탁월하게 포착한 진지한 성과이다. ‘사라짐 이후’ 역시 구축의 결과로 존재해야만 하는 건축의 아이러니를 포착한 이 작품은 인구 소멸과 기후 변화라는 전지구적 위기 상황에 대응하는 건축의 가능성과 다층적인 질문을 생성한다. “인구가 절반으로 줄어버린 서울의 일부를 소멸시키는 방식은 어떠해야 할까?”와 같이 말이다.
백승재+신성현
인하대학교
시간의 축을 세우다
건축은 현재를 위한 것인가, 미래를 위한 것인가, 아니면 과거에 속한 것인가? 오늘날 건축은 하나의 명확한 담론적 경계 안에 머무르지 않으며, 그 경계마저도 극도로 유동적이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우리는 오히려 ‘변하지 않는 건축의 본질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에 다시금 직면하게 된다.
공간은 다른 사물이나 기술과 달리 ‘비어 있음’에서 고유한 가치를 얻는다. 그렇기에 공간은 사용자의 시간을 담아내는 그릇이 될 수 있으며, 건축가는 이러한 공간 속 잠재된 가능성을 구체적인 ‘프로그램’으로 읽어낸다. 결국 ‘시간성’은 건축의 본질이자 대체 불가능한 고유 직능이며, 건축가는 3차원 공간에 시간의 축을 세우는 ‘4차원적 존재’라 할 수 있다.
4차원적 존재로서의 건축가는 변화하는 시대의 요구와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구성 요소들 간의 역학을 분석하고, 공간에 ‘누구의 시간’을 담을지 구체적인 프로그램적 미래의 시나리오를 제안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제 우리는 건축이 ‘시간’이라는 매개를 통해 여러 세대와 사회를 잇는 장치임을 통찰하고, 현대의 핵심 이슈인 ‘인공지능’에 대해 건축적 시각으로 접근하고자 한다.
다가오는 인공지능 시대에 건축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우리는 인공지능이 과거 정보의 축적과 학습을 바탕으로 미래의 정보를 생산한다는 점에서, 건축의 ‘시간성’이라는 본질과 깊게 맞닿아 있음에 주목한다. 우리에게 인공지능은 사회 구성원 간 시간을 초월한 상호작용을 설계할 수 있는 프로그램적 연결고리이자, 현재의 사회문제 해결에 대한 건축의 역할을 미래적으로 확장하는 조력자이다.
낙후된 작업환경, 옅어지는 장소성, 세대교체의 갈림길에 선 문래동은 인공지능과 건축의 복합적 역학관계를 실험하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우리는 이곳에서 현재의 공간적 한계를 해결함과 동시에, “장인 AI”를 통해 문래동 장인들의 기술적 가치가 예술가에게 전수되어 “문래스러운” 장소성이 미래세대에 계승되는 방안을 구상했다. 우리는 미래의 건축가로서 계승과 혁신의 접점에서, 차가운 재료로 가장 따뜻한 미래를 준비하는 설계를 제안한다.
심사평
출품작 「시간의 축을 세우다」는 건축을 단순한 물리적 구축을 넘어, 세대와 사회를 잇는 시간적 장치로 바라보며 변화하는 기술 환경 속에서 건축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무엇보다, 현재 건축 생산의 기반을 가장 강력하게 재편하고 있는 인공지능을 ‘시간을 매개하는 도구’로 해석한 시도가 시의적절하다. AI를 통해 과거의 기술이 미래 세대에게 전승되는 구조를 설계한 점은 발제문이 요구한 ‘건축 내부와 외부 담론의 상호작용’을 효과적으로 상징한다. 문래동이라는 맥락의 선택 또한 현실적 사회관계 속에서 건축이 수행할 수 있는 역할을 고민한 점에서 설득력이 있다. 다만 건축의 ‘시간성’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해석과, 이를 통해 과거와 미래의 시간을 연결하는 “장인 AI”가 공간의 생산에 어떤 실질적 변화를 추동할 것인가에 대한 천착이 부족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작품 속에서 AI의 역할은 과거의 정보를 수집하고 미래로 전달하는 하나의 메타포로 존재하며, 주요 건축적 제안으로서의 타워 역시 로컬 데이터센터와 업무공간이 결합된 다소 관습적인 프로그램으로 구성된다.
건축의 시간성은 왜 중요한가? 여기서 건축가의 역할은 “장인 AI”를 프로그래밍하는 것인가? AI가 수집하고 미래로 옮겨놓을 만한 가치가 있는 문래동의 시간성이란 무엇인가? 등 여러 질문이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작품은 인공지능 시대에 건축가가 스스로의 직능과 담론적 위치를 갱신하려는 자각과 사유의 깊이를 보여주는 의미 있는 시도로 평가된다.
김동준+김연희
국립부경대학교
비인간종을 위한 입주지원 특별법
현대 도시는 인간을 위해 고도로 조직되는 과정에서, 본래의 거주민이었던 비인간종의 터전을 지워왔다. 도시의 확장이 낳은 생태계 파괴는 이제 피할 수 없는 문제로 다가오고 있으며, 이는 건축에게 사회적, 도시적으로 새로운 역할을 요구하고 있다.
본 프로젝트는 도시계획에 비인간종을 포함시킨다. 이를 위해, 2040 서울시 지상철도 지하화 계획부지를 활용하여 비인간종이 스스로의 힘으로 도시에 정착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서식 기반을 마련해주는 법적•공간적 장치인 「비인간종을 위한 입주 지원 특별법」을 제안한다.
우리는 공간의 성격에 따라 공간을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했다. 제1종 비인간주거지역은 안전한 집, 제2종 비인간주거지역은 이 집들을 잇는 길, 그리고 제3종 비인간주거지역은 인간과 비인간이 만나는 공존 지역의 역할을 한다. 이 집, 길, 마당의 유기적인 연결은 도시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생태 네트워크로 완성시킨다.
하지만 서식지 조성을 단기간에 완료하는 방식이 아니라, 최소 5년간 인간의 개입을 금하는 생태계 안정기간을 포함하는 점진적이고 장기적인 과정을 통해 생태계가 스스로 안정화되도록 유도한다. 이는 1단계 수분매개자 우선 조성, 2단계 비인간종 확장 및 보호, 그리고 3단계 인간과의 공존으로 이어지는 시간의 흐름을 통해, 생태계뿐만 아니라 인간 사회 또한 새로운 관계에 적응할 시간을 존중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본 프로젝트는 법, 공간, 시간을 도구로 삼아, 인간과 비인간이 공존하는 새로운 관계의 과정을 지원하고 중재하는 것이 현대 건축의 새로운 역할임을 제안하는는 구체적인 실천안이다. 지금의 조건 속에서 공존의 가능성을 실험하고 회복의 과정을 지원하는 것. 이것이 도시와 함게 살아가기 위한 건축의 새로운 역할이 되기를 바란다.
심사평
출품작 「비인간종을 위한 입주지원 특별법」은 2025 공간학생건축상이 제시한 “건축의 유동하는 경계”라는 주제를 가장 직접적이면서도 개념적으로 확장한 제안 중 하나다. 작품은 건축의 담론을 인간 중심적 패러다임에서 해방시키고자 하며, 도시의 주체를 인간 이외의 생명체로 확장하는 시도를 보여준다. 이는 발제문이 제시한 “건축 내외부 담론의 상호작용”―특히 사회적, 생태적, 제도적 층위에서의 경계 흐림―을 실질적 프로젝트로 번역한 탁월한 사례다.
‘특별법’이라는 장치를 통해 건축을 물리적 결과물이 아닌 제도적•사회적 매개로 확장한 태도는, 주제의 핵심인 “건축의 선택과 당위성”을 명확히 실천한다. 인간과 비인간의 서식권을 ‘주거지역’이라는 용어로 재구조화하고, 법•공간•시간을 통합하는 3단계 생태 전환 프로세스를 설정한 점은 담론적 깊이와 논리적 완결성을 동시에 갖춘다. 특히 도시 생태의 회복을 단기적 설치가 아닌 ‘시간에 의한 재건축’으로 이해한 관점은 인류세적 사고에 근거한 설득력 있는 접근으로 평가된다. 작품은 ‘법적 상상력’을 통해 건축이 언제나 새롭게 정의될 수 있는 사회적 역할임을 상기시키며, 그 권한을 제도와 생태의 경계로 이동시킨다
조유란+김선엽
홍익대학교
Post_Cultivation Protocol
지방소멸로 농가 인구가 급감하며 농지는 유휴화되고, 단작•농약의 결과로 토양 산성화•황폐화가 진행된다. 보령 청라면 음현리는 그 단면으로, 과거 유휴농지 활성화를 시도했으나 자본•노동•기술 한계로 미완에 그쳤다. 우리는 건축을 담론적 실천으로 전제한다. 건축의 작동 논제를 ‘토양’으로 정의하고, 자연/산업/내외부의 경계를 연결 장치로 전환해 굴 폐각의 가치 전이를 지역과 연동한다.
본 프로젝트는 해안의 굴 패각을 유휴농지 재야생화 재료로 전환한다. 패각을 분쇄•성형해 블록을 만들고, 강우로 용출되는 CaCO₃가 산성토를 중화한다. 블록은 생태 데크에 결합되어 이외의 살포 과정 없이 저강도•장기 효과를 토양에 제공한다. 건축은 오브젝트가 아니라 운영 가능한 프로토콜, 곧 shell→soil을 선택하고 배치•속도•측정하는 장치이다.
기존 음현리의 건물들은 최소 개입을 원칙으로 전환된다. 노후한 구조는 철거되고, 활용 가능한 콘크리트골조는 리노베이션 또는 대수선 과정을 통해 스테이•생산•연구시설 들로 재구성된다. 생태 동선은 “Seeds—Branching—Avoid—Loop”로 계획해 영향권을 균등화 한다.
프로토콜은 산업 논리로 닫힌다. 해안 패각 물류→농촌 블록 생산을 잇고, 현장에서는 pH•침투율•종풍부도를 모니터링한다. 운영은 주민과 지자체가 분담하고, 관광•체험 프로그램을 결합해 작지만 지속 가능한 일자리를 만든다. 제안하는 건축은 작지만, 바꾸는 것은 지역의 생태와 소멸위험 지역의 산업이다. 이 제안은 하나의 대지만을 위한 제안이 아닌 비슷한 맥락을 가진 지역들에 적용 가능한 재야생화 프로토콜이다.
심사평
프로젝트는 건축을 오브젝트가 아닌 ‘프로토콜’, 즉 사회적•생태적 변화를 매개하는 운영 장치로 재정의한다. 굴 패각이라는 지역 부산물을 토양 회복의 재료로 전환하여 해안 산업과 농촌 생태를 연결하는 구상은, 건축의 내부와 외부 담론—자연, 산업, 사회—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매우 정교하게 작동한다. 특히 “shell → soil”이라는 명료한 서사는 건축의 존재 방식을 물질적 전환의 과정으로 제시하며, ‘무엇을 구축할 것인가’보다 ‘어떻게 작동시킬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청라면 음현리라는 구체적 지역성과 소멸 위기의 현실을 함께 다루며, 담론적 선택의 당위성을 분명히 한 점 또한 설득력이 크다. 건축의 물리적 형상보다는 시스템과 순환, 지역 운영 구조를 중심으로 사고한 점은 유동적 경계 위에서 건축이 수행할 수 있는 확장된 역할을 잘 보여준다. 다만 공간적 체험의 구체성이 다소 단선적이라는 한계가 있지만, 사회적 생태계 전환의 실질적 모델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는 깊다. 결과적으로 본 제안은 “작지만 시스템을 바꾸는 건축”이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통해, 오늘날 건축이 취할 수 있는 윤리적•담론적 태도의 유효한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주현
국민대학교
비워둔 집
본 프로젝트는 한국에서의 죽음, 그에 걸맞은 추모 공간의 프로토타입을 제안하는 프로젝트다.
근래에 들어 한국에서는 화장(火葬)방식이 보편화 되었고 비자발적으로 도입된 ‘납골당’ 이라는 건축양식이 대중화되었다. 그러나 한국은 혼을 물질화하여 사적인 곳에 보관하고 추모했으며, 육신은 온전한 형태로 매장했다. 또한 우리나라의 추모에서는 본질적으로 혼을 모시는 공간과 그곳의 주변환경이 중요했다. 우리는 그곳에서 주변시와(Unfocused Vision) 피부로 죽은 자를 기억했다. 현재 -어쩌다 보니- 생겨난 납골당은 우리나라의 죽음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되려 님비를 야기하여 죽음 문화의 악순환을 만들고 있다. 더욱이 근대의 도시화로 1인 가구와 핵가족이 증가되었고, 장례 방식도 유교적 의례를 벗어나 다양해지면서 봉안된 기성의 유골들마저 방치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앞으로의 죽음 공간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한국에서 죽은 자를 추모하는 것의 본질은, 산 자들의 주변환경을 통한 채움(實)이다. 채워짐을 위해, 비워낼(虛) 뿐이다. 이에 유골을 보관하는 프로그램과 그의 산물인 두꺼운 디귿자 벽을 없애고 기단과 지붕만을 남겨 주변의 자연환경들을 들이고자 한다. 사이트는 이 프로젝트에 적합한 국립중앙박물관 옆 용산가족공원 제2광장을 선정했으며, 프로그램은 과거 매장을 했던 ‘장지’와, 그 옆 <신주>를 모시며 3년살이를 하던 ‘여막’, 그리고 그곳으로 향하는 여정을 현대의 맥락으로 재해석했다. 현대의 여막에서는 ‘모듈’의 개념이 등장하는데 모듈은 주변 환경에 대응하여 장소마다 다양하게 변주된다. 프로토타입 이후, 한국 어디에서도 활용될 수 있는 여막이 다채롭게 연주되어 평범한 일상이 되기를 기대한다.
심사평
출품작 「비워둔 집」은 ‘죽음’이라는 가장 보편적이면서도 회피되어온 주제를 통해, 한국 사회의 근대화 과정에서 왜곡된 장례 문화와 건축 양식을 비판적으로 성찰한다. 납골당이라는 제도화된 형식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비움’을 통해 ‘채움’을 실현하는 공간적 태도를 제안한 점은 사회문화적 공간 형식을 건축의 본질적 요소로 깊이 있게 다루겠다는 의지로 이해된다.
프로젝트는 ‘여막’과 ‘장지’라는 전통적 장례 구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며, 물리적 공간보다 ‘죽음을 둘러싼 관계의 방식’을 건축의 본질로 끌어올린다. 두꺼운 벽을 제거하고 기단과 지붕만 남긴 구성은 생과 사, 내부와 외부의 경계를 흐리는 행위로서, 용산 가족공원이라는 도시적 맥락의 선택과 함께 죽음의 공간을 일상 속으로 다시 편입시키려는 사회적 제안으로서 의미가 깊다. 건축을 통해 죽음의 담론을 다시 열어젖히고, 한국적 건축정신의 본질—‘비움으로 채우는 공간’—을 현대적으로 갱신한 뛰어난 시도로 평가된다.
정현선+김세연+이건희
삼육대학교
Who is Architect?
남서진+정인준+안기성
국립부경대학교
건축이 다시 ( )로서 기능할 수 있을까?
이시암+장이소
국립공주대학교
Dealing with Green Field
박소희+장하린+김민채
한양대학교
시장상가( )아파트
박정인+김윤서
홍익대학교
Form of Impermanence
문찬
국민대학교
Shelter is Not Enough
김동희+김동령+고준호
제주대학교
Chonetai
우지선
세종대학교
The Bare Island
김재현
울산대학교
Over the Ed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