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만물상> - '공간' 500호

공지  /  2014-11-18 오전 11:37:38



김태익 논설위원

건축가 김수근(1931~1986)은 한국 현대건축의 태두로 불리는 예술가지만 한때 정계 실력자들과도 가까운 사이였다. 그는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 경동교회, 공간사옥 같은 작품과 함께 중앙정보부 광화문 분관 같은 건물도 설계했다. 1966년 장맛비가 한창인 어느 날 그가 100만원짜리 수표 두 장을 흔들며 사무실에 들어섰다. "이것, ○○한테 격려비로 받았어. 맘대로 쓰라는 거야. 어떡하지?"

▶조선호텔 방 하나를 잡고 궁리한 결과 잡지를 만들기로 했다. 제호를 '공간', 부제를 '건축과 미술 그리고 도시계획'이라 했다. 6·25전쟁의 폐허에서 겨우 벗어나기 시작해 '건축가'라는 말 자체가 생소할 때였다. 김수근이 운영 방침을 천명했다. "한국에도 '건축'이 있었다는 걸 후세에 기록한다. 사람에게 인권이 있듯 건축물에도 건축가의 생명과 철학이 있다는 걸 알린다."

▶'업계'라는 게 없었으니 광고가 있을 리 없었다. "등사판을 손수 긁는 한이 있더라도 계속 내겠다"는 김수근의 고집과 열정이 잡지를 지탱했다. 거기에 건축, 미술, 공연, 전통문화 분야에서 '놀 마당'에 목말라하던 제제다사(濟濟多士)들이 힘을 보탰다. 최순우 중앙박물관장과 임응식 이근삼 김원 이흥우 박용구 조동화 정양모 최정호 이강숙 강석희 박서보 신영훈 이구열 오광수 강준혁 황병기 김정옥 구히서 이건용씨(무순)를 비롯해 많은 이가 힘을 모으면서 '공간'은 한 시기 우리 문화운동의 발신기지 역할을 했다.

▶'공간'은 정부가 경복궁에 법주사 팔상전을 기계적으로 재현한 중앙박물관을 지으려 하자 "양복 입고 두루마기 걸친 꼴"(1967)이라고 맹공했다. 경기도 광주·시흥의 10개 면을 모아 강남 신도시를 개발하겠다는 구상엔 "업자와 브로커들의 투기를 부를 것"(1970)이라고 예언했다.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을 처음 국내에 소개(1968)하고, 공옥진의 '병신춤', 김덕수 패의 '사물놀이'를 발굴해 세상에 알린 것도 '공간'이었다.

▶'공간'이 7월호로 지령 500호를 맞았다. 며칠 전 공간사옥에서 있었던 기념연에는 "김수근 형님 안녕하시오. 당신의 공간이 500호를 맞았으니 기뻐하소서!"라는 만장이 걸렸다. 이달부터 올 연말까지 공간사옥에선 후세에 남길 만한 1960~80년대 건축물을 건축전문 사진작가들이 찍은 작품을 모아 '장소의 기록, 기억의 재현'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사람은 가도 그 흔적이 이리 오래 남는 것은 그의 향기와 선구적 안목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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