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간 : 2011년 5월 20일 ~ 7월 7일
오프닝 : 2011년 5월 20일 18:30
장소 : Aedes Am Pfefferberg, Christinenstraße 18-19, 10119 Berlin
시간 : Di-Fr 11 bis 18.30 Uhr, Sa-So 13 bis 17 Uhr
김수근(1931~1986)은 한국에서 가장 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20세기 건축가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사후 2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1979년 Time-Life지의 한 편집자가 제기했던 의문을 되뇌고 있다. “과연 김수근은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될 것인가?” 에서도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지만, 이는 한 건축가의 명성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김수근과 그가 처했던 시대적 상황은 물론, 건축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지적 탐구의 발현인 것이다.
한국이 변화하는 지구촌 환경 속에서 정치적, 경제적 강국으로 부상함에 따라 한때 세계와 단절되어 있던 우리의 깊은 문화적 저수지가 전세계에 공개되고 있다. 그러나 이 문화적 저수지를 그렇게 풍부하고 복잡한 창조력의 원천지로 만든 근대화의 속도와 밀도는 역설적으로 한국의 문화를 더욱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한국의 독특한 상황은 ‘역사는 만들어지는 것이다’라는 개념에 새롭고 구체적인 의미를 부여한다. 글로벌 세상 속에서 한국의 건축과 예술의 역사는 다시 쓰여야 한다. 하지만 과연 이 이야기는 어떤 식으로 전개될 것인가? 베를린의 건축전문 갤러리인Aedes East에서 주최하는 은 새로운 문화적 구성체로서의 김수근, 다시 말해 끊임없이 역동적인 한 사회에서 권력과 공동체 그리고 자유가 빚어낸 응집된 혼합체로서의 김수근이라는 존재를 천착하여 풀어낸다.
김수근은 1931년 함경남도 청진에서 태어났다. 그는 당시 4년제 건축과가 있던 단 두 곳 중의 하나였던 서울대학교 건축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학업을 시작한지 3개월도 되기 전에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갓 스물이었던 그는 일본으로 밀항해 건축 공부를 계속했고, 요시무라 준조(吉村順三)의 지도 아래 동경예술대학교에서 학사학위를 받은 후 동경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59년 동경대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던 김수근은 동료 한국인 건축가들과 팀을 이루어 대한민국 국회의사당 현상설계에서 1등 당선되었다. 4.19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이 붕괴되어 국회의사당 프로젝트는 무산되었지만 김수근에게 고국으로 돌아올 기회를 마련해 주었다.
1961년 쿠데타로 새롭게 권력을 잡은 군사 정권의 호감을 사면서 김수근은 떠오르는 스타로 발돋움하게 된다. 산업화에 박차를 가하는 국가의 주요 프로젝트들을 맡아 조형적인 거친 콘크리트(beton brut) 의 건축을 선보였다. 김수근의 이런 초창기를 대표하는 작품들로는 힐탑 바(1961), 자유센터와 타워호텔(1963), 부여박물관(1965),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본관(1967), 등이 있으며,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 사장으로 취임한 후에는 여의도 마스터 플랜, 서울 도심부 재개발, 국제공항 건설 등 주요한 도시개발 계획들을 지휘했다.
부여박물관은 김수근의 건축에 주요한 전환점이 된다. 한일국교정상화가 되면서 반일 감정이 극에 달한 가운데 부여박물관의 정문이 일본식이라는 비난이 터져나오면서 건물뿐만 아니라 건축가인 김수근까지도 왜색 시비에 휘말리게 된 것이다. 건축가로서의 생명이 끝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김수근은 살아남았다. 그리고 이후로는 초기의 조형적인 모뉴멘털리즘에서 벗어나 현대 한국 건축가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정의하게 될 새로운 시기에 접어들게 되었다. 이때부터 벽돌이 김수근의 주재료가 되었고 공간과 장식을 활용한 스케일의 통제가 가장 중요한 요소로 부각되었다. 그는 점차 거대해지는 공공과 민간 프로젝트들에서 물러나 한국의 미를 향해 눈을 돌렸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작품들로는 공간그룹 사옥(1971년, 1977년), 서울대학교 예술대학(1973), 올림픽 주경기장(1977), 한국문화예술진흥원 문예회관(1977), 마산 양덕성당(1978), 경동교회(1980) 등이 있다.
김수근은 단순히 건축가가 아니라 한국 문화의 대변자였고, 이를 향유하고 사랑했던 후원자였다. 그가 1966년에 창간한 도시, 건축, 예술 전문지인 『공간』은 당시 거의 유일의 건축 잡지였다. 창간 50주년을 앞두고 있는 『공간』은 여전히 한국에서 가장 중요한 건축 잡지로서 위치를 이어가고 있다. 1977년에는 공간 사옥 지하에 ‘공간사랑’이라는 소극장을 개관했는데 이 곳은 아방가르드 무용과 문예, 공연, 음악 활동을 위한 장으로 자리잡았다. 열정과 애정으로 황막한 대지에 예술이 숨을 쉴 곳들을 만들었다.
김수근은 이소자키 아라타(磯崎新, 1931~ )와 동년배였지만 그의 궤적은 오히려 이소자키의 스승인 단게 겐조(丹下健三, 1913~2005)와 더 가까웠다. 김수근은 내내 독재사회 속에서 활동해야 했고 그의 생전에는 아쉽게도 한국의 민주주의가 꽃피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그는 민족주의와 냉전 시대의 기념비들을 설계했고, 재건과 경제발전을 지상목표로 하는 고국의 도시들을 계획했으며, 한국에서 모더니즘의 발판을 만들었고, 누구도 보지 못했던 놀라운 공간과 형태들을 창조했다. 이처럼 응집된 모더니티 속에서, 김수근이라는 강렬한 역사의 에너지, 건축의 힘은 전세계의 지성과 절제, 그리고 열정을 가진 통찰을 기다리고 있다.
모더니티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세계 도처에서 목격하고 있다시피 근대성이라는 아이디어는 과거의 유럽중심적 사고로는 상상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아직 생생하게 살아 있다. 우리의 창조적 실천을 받쳐줄 근거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은 역사에 대한 너무도 편협한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김수근 건축의 잠재적 근대성에 담긴 속도감 및 강렬함은 과거와의 새로운 관계를 재구축함으로써 의미 있는 현재와 미래의 비전을 창조할 것을 촉구하는 공개적 유언인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나의 것과 남의 것, 아는 것과 모르는 것들이 서로 뒤엉키며 경계가 불안해지는 어떤 시간의 이동이 개입한다. 그것이 바로 세계를 향해 활짝 열려 있는 응집된 근대성이다.
배형민
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부
김수근 25주기를 맞이하여 독일에서 전시회가 열립니다. 근대건축의 흐름속에서 김수근과 김수근의 건축에 대해 재조명하는 전시회입니다.
Aedes Museu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