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해설

건축은 기계와 함께 끊임없이 변화해왔다. 거주공간에서의 냉장고는 주방의 크기를, TV화면의 크기는 거실의 폭에 영향을 미쳤다. 고층빌딩은 엘리베이터가 있었기에 가능하였고, 상자 속 깊숙이 사람들을 빨아들이는 에스컬레이터는 백화점과 쇼핑몰을 가능하게 하였다. 장거리 이동을 편리하게 한 자동차는 대도시가 가능하게 하였고, 동시에 엄청난 부피의 주차장으로 건축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세상의 변화속도는 팬데믹이라는 위기를 기회로 삼아 더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인터넷과 휴대용 장치, 클라우드 서버로 인해 더 이상 한 장소에 모여 일할 필요가 없어졌으며, 집에서 의식주의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핸드폰 속 어플리케이션과 인공지능이 맞물려 거대한 도시의 유통시스템을 진화시키고, 건축과 도시공간의 물리적인 변화를 이끌고 있다.

100년전 (1923년) 발표한 르 꼬르뷔지에(Le Corbusier)의 [건축을 향하여]에서 “집은 살기 위한 기계다(A house is a machine for living in.)”라는 발언은 잘 알려져 있다. 산업혁명 시대의 대량생산과 표준화를 비롯해 자동차/여객선/비행기 등의 기계에 대한 관찰의 결과였다. 이를 바탕으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새로운 주거공간이 탄생했다. 기능적, 합리적, 논리적 속성과 표준화된 결과들로 기계가 건축에 줄 수 있는 의미와 미학을 이해하고 활용하려 했다고 한다.
그로부터 정확히 1세기가 지난 지금 우리는 비슷한 상황에 처해있지 않을까? 현재 우리가 마주한 다양한 현상으로부터 새로운 건축을 발견할 수 있지 있을까? 새로운 기계들의 도전에 대응하는 건축은 없을까?
제 35회 공간 국제 학생건축상에서는 기계로 인해 직면한 우리의 새롭고 다양한 상황들을 조사하고, 수많은 가능성을 발견해내며, 이에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건축을 상상해보고자 한다.

핸드폰속 RFID와 어디에나 설치된 CCTV는 사람들의 소비행위와 행동 패턴의 빅데이터로 전환시켜, 대형마트 가판대의 진열될 상품부터, 동네 골목상점의 사업성을 예측해주고 있다.
헤드기어를 쓰면, 물리적 제약이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세계에 접속이 가능하다. 드론이 이동(운송) 수단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으며, 전기자동차와 자율주행은 주유소 및 주차장에 대한 생각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운전석이 필요 없는 자율주행 자동차는 운전 이외의 다른 행위가 가능한 독립된(새로운 인식과 디자인이 요구되는) 공간으로 부상하고 있다.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들은 자동차와 그 기술을 기반으로 한 도시계획을 앞다투어 발표하고 있다. 이와 같이, 하드웨어(hardware)에서부터 소프트웨어(software)까지 우리 생활에 많은 변화가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이런 현상에 건축이 대응할 수 있는 것은 없는 것일까? 직간접적으로 공간 환경에 엄청난 영향을 받고 있지만, 이에 대응하는 건축적인 대응이나 상상력은 발견하기 어렵다.

[프로젝트 과제]
이 공모전의 목적은 급속하게 변화하는, 기술과 기계기반의 세계에 대해 건축이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이다. 건축이 기계에 대한 수동적인 수용체가 아닌,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활용하는 능동체로서 건축을 상상한다. 우리의 일상에 개입한 새로운 기계의 능력에 맹목적인 수용이 아닌, 건축의 의미와 가치를 업데이트하고 그 접점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여기서 언급한 ‘기계’라는 단어는 연장이나 기구 따위를 말하는 것만이 아닌, 동력을 써서 움직이거나 일을 하는 장치를 뜻한다. 컴퓨터부터 현재의 다양한 디지털 제품들과 인공지능(A.I.)까지를 포괄하는 단어가 될 수 있다. 해법은 다양하고 제안은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다. 아주 섬세할 수도 아주 대범할 수도 있을 것이다. 건축과 기계의 병존일수도, 배척일수도 혹은 융합일 수도 있을 것이다. 디자인 과정을 상상하며 시나리오를 작성하곤, 결론은 물음표로 놔두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아주 작은 스케일의 기구단위부터 도시와 관련된 거시적인 범위까지, 다양한 해석과 제안이 포함될 수 있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질문들이 가능할 것이다.
1) 어떤 기계(기술)가 건축에 새로운 변화를 요구하는가?
2) 건축가로서 제안 가능한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3) 건축이 어떻게 기계에 개입하며, 기계는 어떻게 건축에 개입할 수 있을까?
4) 결과적으로 건축가가 제안하는 건축적 가치 혹은 의미는 무엇인가?

조금 더 구체적인 예를 들어본다면,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무인화된 공간에, 기존의 모든 공간들이 아직도 유효한가?
드론으로 접근 가능한 건물에 건축가는 동선체계를 계획할 수 있을까?
전기에너지와 자율주행을 탑재한 자동차는 운전석 대신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진 건축적 공간이 아닐까?
메타버스의 공간을 프로그램들이 제공하는 툴로만 놔둘 것인가?
가상현실의 구축을 위한 건축가가 제안할 수 있는 시스템은 없을까?
등등 예시들은 아주 작은 일부에 불과할 것이다. 다만, 이런 질문을 통해 우리가 알고 있는 전형적인 건축의 영역이 경계는 명백히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모든 건축가가 그러하듯, 건축의 본질과 사회적 가치에 대한 질문은 지속하되, 이번 공모전에서만큼은 기계에 반응하는 건축의 새로운 모습을 상상해 보길 기대한다. 기계에 대응하는 방식이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 대응하기 위한 유일한 해법이 아닐 수 있지만, 우리에게 새로운 시각을 열어줄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주길 기대한다.

[심사위원]
안기현은 교육자로서 현재 한양대학교 건축학부 교수이자 건축가이다. 한양대학교 건축공학부와 U.C버클리 건축대학원에서 수학 후 국내외 유명건축설계사무소에서 실무경력을 쌓은 후 2010년에 본인이 설립한 AnLstudio와 다양한 스케일의 건축/공간/도시에 관해 작업들을 해오고 있다. 오션스코프, 몽당, 얇디얇은집, 다공 등의 대표작이 있다. 이들 작업은 레드닷어워드 베스트 오브 베스트, 경기도 건축문화상 우수상, 서울건축상 우수상, 충남건축상 우수상을 수상하였다. 안기현은 2016년 젊은 건축가상, 2019 오늘의 젊은 예술인상을 수상하였다. 2014년 설화문화전을 기획하였고, 2016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용적률 게임’에 공동 큐레이터로 참여하였다. 2017년부터 2020년까지 서울시 공공건축가로, 2018년 서울시 골목건축가로 활동하며 공공건축에도 기여하고 있다.